조선 중기 문신 허균(許筠)이 집필한 음식 비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을 현대적 시관에서 분석한 신간이 출간되었다.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김풍기 교수는 최근 저서 『허균의 맛: 조선 미식 선비의 음식 노트』(글항아리 刊)를 통해, 1611년 유배지에서 기록된 허균의 음식 정보를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정리했다.
『도문대작』은 허균이 전라도 함열 유배 당시, 과거에 경험했던 팔도의 음식을 떠올리며 기록한 문헌이다. 제목인 ‘도문대작’은 푸줏간 문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현실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기록으로나마 되새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신간에서 김풍기 교수는 원전에 수록된 식재료 중 65종을 선별하여, 각 식품이 당시 사회에서 가졌던 가치와 유통 경로, 조리법의 변천사를 상세히 기술했다.
이 책은 허균이 궁중 식재료를 관장하는 관직인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내며 접했던 최고급 식재료부터 서민들이 즐기던 음식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다룬다. 곰 발바닥(웅장)이나 사슴 꼬리(녹미)와 같은 희귀 식재료는 물론 동해안의 대게와 남해의 어류 등 17세기 조선의 지역별 특산물 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
특히 허균이 강릉에서 맛본 ‘방풍죽(防風粥)’의 향과 맛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당시 사대부들이 음식을 단순한 섭취의 대상이 아닌 정서적 안정을 찾는 매개체로 활용했던 문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변모한 조선의 식생활과 농산물 수급 상황을 허균의 문장을 근거로 추적함으로써, 한식의 원형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학술적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허균이 단순히 맛을 탐닉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식재료의 생산지와 제철의 중요성을 기록한 점에 주목한다. 이는 현대의 로컬 푸드 체계와 식재료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식 철학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책은 허균의 문장 뒤에 숨겨진 당대 지식인의 고뇌와 고달픈 유배 생활을 음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인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김풍기 교수는 이번 저서를 통해 문헌 속 식재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한 미식의 기록을 넘어선 당대 사회의 경제적·심리적 단면을 복원해냈다. 이는 오늘날 한식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지역 식재료의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