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한식의 날 제정, 국가 식문화 전략의 출발점 돼야
    • 행사성 기념일을 넘어, 한식 산업 생태계와 문화외교의 플랫폼으로 키워야 한다
    • 매년 10월 24일이 ‘한식의 날’로, 그날부터 1주간이 ‘한식 주간’으로 법에 명시됐다. 한식진흥법 개정으로 한식의 날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법은 한식산업을 진흥하고 한식의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날을 정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사·교육·홍보를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한식을 오랫동안 지켜온 현장과 업계, 학계의 숙원이 비로소 공식적인 국가 의제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제정은 늦었지만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한식의 날 제정의 첫 번째 의미는 상징성에 있다. 한식은 더 이상 가정의 밥상이나 외식업의 한 갈래로만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국가는 이미 한식을 진흥해야 할 문화자산이자 산업자산으로 보고 있다. 한식진흥원 역시 한식의 역사성과 문화성을 바탕으로 원형을 발굴·복원·유지·발전시키고, 세계 시장에서 한식당의 위상을 높이며, 한식 제품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식의 해외 확산을 도모하는 일을 핵심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식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한식의 문화 보존과 산업 진흥, 해외 확산을 한 축으로 묶는 제도적 선언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11월 22일 ‘김치의 날’이 있다. 김치산업 진흥법은 김치산업의 진흥과 김치문화의 계승·발전, 그리고 국민에게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정하고 있다. 김치의 날은 식품 분야 최초의 법정기념일로 자리 잡았고, 김치 재료 하나하나가 모여 다양한 효능을 낸다는 상징성을 통해 국민적 인지도를 넓혀왔다.

      그렇다면 한식의 날은 김치의 날과 무엇이 다른가. 결론부터 말하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확장 관계다. 김치의 날이 한국 식문화의 대표 상징 하나를 집중 조명하는 날이라면, 한식의 날은 김치를 포함해 장류, 발효음식, 향토음식, 절기음식, 상차림 문화까지 아우르는 더 큰 틀의 국가 식문화 기념일이어야 한다. 김치의 날이 한식의 대표 콘텐츠를 세우는 제도였다면, 한식의 날은 그 상징을 대한민국 식문화 전체의 가치와 미래 비전으로 확장하는 제도여야 한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못하면 한식의 날은 중복된 기념일로 오해받기 쉽고, 이 점을 분명히 세우면 한식의 날은 김치의 날 위에 세워지는 상위 플랫폼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외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준다. 해외의 식문화 강국들은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나 관광상품 수준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음식 문화를 국가 브랜드, 산업 전략, 문화 외교의 핵심 자산으로 다뤄왔다.

      일본의 와쇼쿠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중요한 것은 특정 요리가 아니라 ‘일본인의 전통적인 식문화’라는 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와쇼쿠를 생산·가공·조리·소비에 관련된 기술과 지식, 관습과 전통이 결합된 사회적 실천으로 설명한다. 음식이 메뉴가 아니라 생활문화라는 인식이 제도와 외교의 언어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도 2016년부터 세계 이탈리아 음식 주간을 운영하며, 매년 주제를 정해 음식·건강·문화·혁신·지역성을 함께 알리고 있다. 프랑스의 Goût de France는 150개국 규모의 글로벌 미식 캠페인으로, 같은 날 세계 곳곳의 프랑스 레스토랑과 외교 네트워크가 프랑스 요리를 문화외교의 장으로 바꾼다.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음식을 자랑만 하지 않는다. 제도화하고, 국제화하고, 산업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 학계와업계, 셰프와 교육기관, 관광과 무역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장기 전략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우리가 한식의 날을 바라봐야 할 정확한 방향이다.

      한식의 날은 행사 몇 개 열고 끝낼 일이 아니다. 사진 찍고 축사를 하는 날로 끝난다면 이 제정은 곧바로 형식으로 굳어질 것이다. 한식의 날은 축하의 날이기 전에 점검의 날이어야 한다. 우리는 매년 이 날에 한식의 원형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지역의 맛을 얼마나 살리고 있는지, 청년 조리인과 소상공인을 얼마나 키우고 있는지, 해외 소비자에게 한식을 얼마나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앞으로 한식의 방향도 분명해야 한다. 첫째, 전통의 보존과 현대화의 균형이다. 한식의 정체성은 지키되, 오늘의 식생활과 세계의 소비 환경에 맞는 설명과 표현, 상품화 전략은 더 세련돼야 한다. 원형은 박제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의 대상이고, 계승은 시대와의 대화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둘째, 한식을 지역과 더 강하게 연결해야 한다. 한식은 몇몇 유명 식당의 대표 메뉴가 아니라, 전국의 농산물과 바다, 장과 김치, 절기와 풍속, 사찰음식과 향토음식이 함께 만든 총체적 문화다. 정부의 식품산업진흥 시행계획 역시 K-Food 경쟁력 강화 과제로 국내 미식관광 활성화와 한식 홍보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한식의 날이 성공하려면, 한식 진흥이 곧 지역경제 진흥이 되고 식문화관광 진흥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한식을 산업으로 키우되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K-Food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정부는 식품산업 규모와 수출 확대를 국가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 가는 음식은 유행하는 음식이 아니라 이야기와 철학을 가진 음식이다. 한식이 왜 건강한지, 왜 조화로운지, 왜 공동체적 식문화를 품고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면, 한식은 잠깐의 트렌드로 소비될 뿐이다.

      넷째, 한식의 미래는 결국 인재와 교육에 달려 있다. 조리 기술만 가르쳐서는 부족하다. 식재료의 역사, 발효의 과학, 지역 문화, 위생과 안전, 외국어 소통, 디지털 홍보까지 아우르는 통합적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한식의 날이 살아 있는 제도가 되려면 학교·지자체·업계·언론이 연결되는 교육 생태계가 이 날을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한식일보는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한식의 날 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김치의 날이 한식의 대표 상징을 세우는 데 의미가 있었다면, 이제 한식의 날은 그 상징을 한식 전체의 역사와 문화, 산업과 관광, 교육과 외교의 언어로 넓혀야 한다. 일본의 와쇼쿠처럼 식문화를 생활양식으로 설명하고, 이탈리아처럼 민관 네트워크로 세계를 연결하고, 프랑스처럼 미식을 국가 브랜드의 품격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한식의 날은 그런 미래 전략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한식은 한 끼 식사가 아니다. 한식은 한국인의 역사이고 생활이며 공동체의 기억이고, 앞으로 더 키워야 할 국가 자산이다. 10월 24일이 진정한 한식의 날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이날을 맞아 박수만 칠 것이 아니라 한식의 내일을 더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식의 날이 생겼다”는 만족이 아니라, “한식의 시대를 어떻게 열 것인가”에 대한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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