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도심 레스토랑을 떠나 충남 당진의 두릅밭을 선택하고, 2026년 한식대가의 칭호를 얻은 구본신 셰프가 전하는 자연과 상생하는 한식 철학을 만나본다.
끊임없는 배움으로 쌓아 올린 조리 장인의 길
“자연을 담아, 행복을 요리하다.” 구본신 셰프가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이 한 문장에는 그의 삶 전체가 압축되어 있다. 그는 스스로를 “요리와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하지만, 그의 이력은 한국 요리계의 산증인 그 자체다.
1994년 한식조리기능사를 시작으로 복어·일식·중식조리기능사까지 동서양 조리 세계를 차근차근 섭렵했고, 2006년 에스코피에 디플로마를 통해 서양 소스 개발의 기초까지 체계적으로 익혔다. 각각의 배움은 단순한 자격증 수집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으로 녹아드는 과정이었다. 2007년 홍승 스님에게서 사찰음식을, 2010년 박상혜 선생님께 천연 조미료를, 2013년에는 한국전통주 주향사 과정을 통해 전통 식문화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러한 배움은 국제 무대에서 빛나는 결실을 맺었다. 사찰요리로 세계요리경연대회 1위를 차지하는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수상하며 한국의 맛을 세계에 알렸고, 2024년 외식 명인에 이어 2026년 5월 18일 마침내 ‘한식대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경리단길의 불을 끄고 당진의 흙을 선택한 용기
‘농부셰프’라는 수식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에서 탄생했다. 이태원 경리단길과 논현동에서 17년 2개월간 운영한 ‘모토’는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손님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한 신뢰와 열정의 공간이었고, 강력한 팬덤은 그에게 끊임없는 도전과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오랫동안 지켜온 가게의 불을 스스로 끄고 고향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농부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안전한 먹거리를 직접 키워내는 일은 그에게 “또 다른 요리의 시작”이었다.
귀농 이후에도 배움의 열정은 식지 않아 건설기계조종사, 무인 멀티콥터 1종, 스마트팜관리사 1급 등을 취득하며 농업과 미래 기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제 제 요리는 단순히 맛을 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건강을 전하고 행복을 나누는 삶의 철학입니다.”
“조미료는 행복의 씨앗” - 한 끼가 바꾸는 관계의 온도
구본신 셰프에게 조미료는 “행복이란 씨앗”이다.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두고 “건강한 맛”, “자연의 맛”을 말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이다. 적절한 조미료가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을 피우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요리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증명하는 잊지 못할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잔뜩 인상을 쓴 젊은 부부가 매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요리를 먹기 시작한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두 분은 90도로 깊이 인사하며 말했다. “첫 요리를 먹으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둘이 동시에 ‘맛있다!’ 하면서 화가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풀렸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순간 구본신 셰프는 “온몸에 행복이 돌았다”고 회상한다. 요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순간 다시 한번 확신했다.
몸과 마음 전체를 배려하는 완전한 요리 철학
“저는 잘 먹고 잘 소화시켜 배설까지 생각을 합니다.” 다소 직설적인 이 철학에는 그의 깊은 배려가 담겨 있다. 그에게 진정한 요리란 입안에서의 즐거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건강한 먹거리로 만든 음식이 먹는 순간의 행복은 물론, 소화 과정 전체에서 몸에 부담을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본다.
현재 그가 당진의 밭에서 정성껏 키우는 주력 작물은 ‘이형 두릅’이다. 여름 두릅으로 불리는 이 품종은 장아찌, 김치, 건나물 등 활용도가 높고, 다른 두릅보다 탁월한 아삭한 식감과 고운 순 모양을 자랑한다. 직접 재배한 작물로 요리를 완성하는 그의 방식은 ‘밭에서 식탁까지’라는 철학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는 삶 그 자체다.
전통장과 농작물이 빚어낸 경연대회의 감동
2026년 대한민국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에서 구본신 셰프는 ‘농부셰프’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엄나무 솥밥, 모둠 나물을 넣은 오징어순대, 모둠 나물 고기만두, 나물 된장 파스타, 두릅 백김치, 전통장으로 만든 장아찌까지, 우리 땅에서 자란 식재료와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 발효 식품이 현대적 감각과 어우러진 작품들이었다.
자연 속에서 써 내려가는 희망찬 미래
“저는 도시 생활보다는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 쪼그려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풀을 뽑는 삶이 그에게는 더없이 충만하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저부터 시작하면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으로 오늘도 밭을 일군다.
한식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도 진심 어린 당부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후배님들, 된장·고추장·간장은 꼭 공부하고 제대로 배워주세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화려한 트렌드보다 한식의 근본을 강조하는 이 한마디에, 수십 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다.
땅에서 시작해 밥상에서 완성되는 구본신 농부셰프의 요리 철학은 오늘도 충남 당진의 두릅밭에서 조용하고 묵직하게 익어가고 있다. 화려함보다는 진실을, 트렌드보다는 본질을 추구하는 그의 선택은 한국 음식문화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만의 뿌리를 잃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한식의 미래를 향한 소중한 나침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