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세계 영양학계가 다시 ‘식이섬유’에 주목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푸드(Nature Food)에는 식이섬유를 아미노산·비타민·미네랄처럼 ‘필수영양소’ 수준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제안이 실렸다. 연구진의 요지는 단순하다. 식이섬유는 우리 몸이 직접 흡수하는 영양소라기보다, 장내 미생물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돕는 핵심 기질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식이섬유 섭취가 늘어날수록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대장암 같은 만성질환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반복해서 보고돼 왔고, 혈당·콜레스테롤 같은 대사 지표에도 긍정적 변화가 관찰돼 왔다.
이 흐름은 정책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2025–2030 식생활지침은 “진짜 음식(Real Food)”을 강조하며 가공식품·정제 탄수화물·첨가당 섭취를 줄이고, 통곡물·채소·과일·콩류 같은 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식탁의 중심에 두라고 권한다. 특히 ‘장 건강’을 별도로 다루면서, 발효식품과 고섬유 식품이 장내 미생물 균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짚는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이제 건강의 기준은 ‘칼로리’만이 아니라 ‘장내 생태계’를 어떻게 돌보느냐로 확장되고 있다. 가공을 줄이고 식이섬유와 발효를 식단의 중심에 복원하려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뚜렷해지는 지금, 한식은 채소·콩·통곡물·발효가 한 상에서 만나기 쉬운 ‘구조’ 자체로 그 방향과 맞닿아 있다.
▲ 한식의 구조적 강점, 식이섬유와 발효의 ‘이중주’
이 지점에서 한식은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다. 한식은 본래 통곡물·채소·콩류·해조류·발효식품이 한 상에 함께 오르기 쉬운 구조다. 즉, 식이섬유를 “의식적으로 챙겨야만” 하는 식단이 아니라, “밥상 구조 자체가 식이섬유를 끌어올리는” 식단이다.
첫째, 김치다. 김치는 채소를 기반으로 한 발효식품이며, 자연스럽게 식이섬유를 포함한다. 무엇보다 김치는 국제식품규격(Codex)에 별도 표준으로 규정돼 있어, 국제적으로 ‘김치’라는 품목이 어떤 원료와 제조 특성을 갖는지, 어떤 기준으로 다뤄져야 하는지가 정리돼 있다. 이는 김치가 세계 시장에서 ‘정체성과 기준’을 설명할 때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된다. 또한 김치는 발효식품이라는 특성상, 장 건강을 논할 때 세계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대표 사례 중 하나가 됐다.
둘째, 나물이다. 나물 반찬은 한식의 진짜 힘이다.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콩나물 등 나물은 식이섬유뿐 아니라 비타민·미네랄·식물성 생리활성 물질을 함께 제공한다. 무엇보다 데치거나 볶는 조리 방식은 섭취 편의성을 높여 채소를 ‘꾸준히, 많이’ 먹게 만드는 현실적인 장치다. 한식의 나물 문화는 단순한 반찬 기술이 아니라, 현대인의 장내 생태계를 지키는 생활형 시스템에 가깝다.
셋째, 콩과 장류다. 한식은 콩을 ‘반찬’이 아니라 ‘기반’으로 쓰는 문화다. 두부, 콩나물, 콩류 반찬은 섬유 보완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된장·간장·고추장·청국장 같은 장류는 발효 식문화의 핵심 축이다. 물론 장류는 나트륨과도 연결되는 만큼 “무조건 많이”가 아니라 “덜 짜게, 균형 있게”가 중요하지만, 발효라는 자산을 가장 일상적으로 쓰는 식단이라는 점에서 한식은 독보적이다.
결국 한식은 ‘식이섬유(프리바이오틱스의 기반) + 발효(발효식품의 문화) + 채소·콩·통곡물(원재료의 다양성)’이 한 상에서 결합하는 구조를 이미 갖고 있다. 세계가 지금 되돌아가려는 방향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구현해온 셈이다.
▲ 세계 권고와 한식, “충분히 가능한” 실천 모델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식이섬유 섭취에 대해 하루 최소 25g 수준을 권고하며, 통곡물·콩류·채소·과일 중심의 섭취를 강조한다. 미국 식생활지침 역시 통곡물과 채소·과일, 콩류 섭취를 강조하고, 가공식품과 첨가당·정제 탄수화물은 줄이라는 방향을 분명히 한다.
이를 한식으로 치환하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잡곡 또는 통곡물 중심의 밥, 콩을 활용한 반찬이나 국·찌개, 김치와 나물, 제철 과일을 꾸준히 올리는 식사. 이런 구성은 섬유 섭취 목표에 근접하거나 충족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한식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현대 식생활에서 한식의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는 데 있다. 흰쌀 중심 식사에 가공육·인스턴트·패스트푸드가 늘어나면 섬유는 줄고 정제 탄수화물과 첨가당이 늘기 쉽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이 변화는 더 빠르게 나타난다.
새해에는 결심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줄일지보다, 무엇을 복원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김치와 나물, 콩과 통곡물. 이 네 가지가 한식의 핵심이자, 장내 생태계를 위한 핵심이다.
▲ 한식의 세계화, 이제는 ‘건강 모델’로 설계해야
한식의 세계화는 그동안 맛과 문화의 언어로 확장돼 왔다. K-푸드가 세계인의 식탁을 두드린 것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한식을 단지 ‘이국적 음식’이 아니라, 가공을 줄이고 섬유·발효·채소·콩·통곡물을 일상에 담는 ‘건강식단 모델’로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식업계와 정책 당국에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한식 메뉴 개발과 표준화에서 ‘통곡물·콩류·채소·발효식품’이 포함된 구성을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 “맛있는 한식”을 넘어 “구조적으로 건강한 한식”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한식 홍보는 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 권고와 학계 논의가 제시하는 큰 흐름 속에서, 한식이 왜 유리한지 ‘현대 과학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선택이 된다.
셋째, 학교급식과 공공급식에서 한식의 균형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김치와 나물, 콩과 통곡물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는 환경은 장기적으로 건강 비용을 줄이는 투자다.
넷째, 조리·외식 분야와 영양학·미생물학 분야의 협업을 강화해 한식의 강점을 데이터와 교육 콘텐츠로 체계화해야 한다. 한식의 설득력은 ‘전통’만이 아니라 ‘근거’에서 완성된다.
▲ 한식의 가치를 ‘지금의 언어’로 다시 세울 때
식이섬유를 필수영양소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논의는, 결국 장내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세계는 가공식품 중심 식생활의 한계를 체감하며 ‘진짜 음식’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 김치·나물·장류·통곡물과 콩으로 대표되는 한식이 있다.
이제 한식의 세계화는 단지 한국 음식을 해외에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야 한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식단 모델로서 한식을 다시 설계하고, 근거 기반의 언어로 설명하며, 세계 식탁에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식이섬유 시대에 한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